크리스마스를 아이들 없이 지낸 적이 있었던가? 몇 년 만이었던가? 아니면 처음이었던가? 조차 가물가물,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런데 작년(벌써 작년?)은 정말 아이들 없이 크리스마스를 지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섭섭한 마음보다는 참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는 번거로움도 없을 것 같고 조용할 것 같아 기회다 싶어 집수리 몇 가지를 계획 했습니다. 지붕도 고치고 나무도 몇 개 베어버렸습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분주한 즈음, 노인네 두 사람이 사는 우리 집은 장식은커녕 명절도 모르고 지붕을 뜯고 새 지붕을 얹느라 뚝딱거리는 소리와 나무를 베어내리는 톱 소리로 온 동네 사람의 이른 아침잠을 깨우는 등 이상한 외계인으로 입에 오르내릴 것이 뻔한 사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에는 분명 생각보다 행동이 잽싸 버렸더랍니다. 하여간 음정과 박자가 영 안 맡는 Christmas Carol 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저 멀리 바다 건너 살고 하나는 그래도 이 땅에 남아 있었지만 사정상 크리스마스 후에나 집에 오겠다는 딸에게 괜찮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아빠가 외로울 것을 생각하고 늦게나마 와준 딸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이 엄마의 딸 시집살이가 시작 되었더랍니다. 집 떠나간 상전들을 손님으로 영접할 날을 위해서 아이들 방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고 있는지 몇 해던가? 그러다 보니 이제 아이들은 정말로 어려운 손님이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Christmas가 다 지나간 연후에 나타난 막내 손님이 성탄절에 Tree가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어이가 없다는 듯 다 늦게 Christmas Tree를 구하러 나서는 겁니다. 이 엄마는 미안한 마음과 별 꼴이다! 하는 엇갈리는 마음으로 줄레줄레 따라 나섰습니다. 또한 이 짱아 엄마는 혹 어느 집에서 나무를 내다 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동넷집 앞뜰을 차창 밖으로 기웃거려도 보았습니다. 기웃 거리는 엄마를 눈치 챈 딸아이가 갑자기 깔깔 웃으며 ‘엄마 나도 열심히 보고 있거든’ 하는 겁니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지요! 동네 Garden Center에 하는 수 없이 들렀습니다. 주인장께서 우리 사정을 듣더니만 나무 하나를 찾아 차에 실어주었습니다. 팔다 남은 Christmas Tree는 Township에 보내어 봄에 mulch로 쓴다는 설명에 우리는 으례 공짜나무라고 생각을 했었건만 그게 아니고 20불을 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암말도 못하고 20불을 내밀고 Thank you를 연발하고 나왔습니다. 딸아이와 나는 씁쓸하고 뻥한 심정이었지만 잠시 후 둘이서 박장대소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남기며 Christmas Tree는 뒤 늦게나마 거실에서 예전과 같이 불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소동을 부리며 시작된 나의 시집살이는 그것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님은 완전히 우리를 보살피려고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잠을 잘 못 잔다는 엄마를 위해서 침대를 바꿔야 한다느니, 잠을 깊게 자게 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Sleep Mate 라는 기계를 사가지고 와 틀어놓고 방안에 가구를 온통 바꿔놓고 난리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또 어버이를 뉴욕 Lincoln Center에 Opera에다 Philadelphia Orchestra(Beethoven No,5) 이렇게 두 군데나 데리고 다니며 그동안 궁했던 문화인으로의 호강까지 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것은 하면 안 된다. 저것도 하면 안 된다. 음식은 Organic을 먹어라, 시어머니 잔소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딸이 무서워 우리는 하라는 대로 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아빠가 고집이 세서 말을 안 듣는다고 야단까지 맞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이 엄마는 딸이 떠나갈 날을 곱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와줄까 기다려지는 우리 귀한 상전 손님들 방을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해놓으며 기다렸건만 나는 지금 이 시어머니가 언제나 떠나가 내 자유를 다시 찾아 누려 볼가? 기다려졌습니다.
오늘은 딸이 떠나간 빈자리에 앉아 이 엄마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모두 성인이 된 아이들을 나는 아직도 내 품에 아이들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나이가 들어 고루해지고, 느려지고, 힘도 없어진 엄마 아빠를 이제부터는 자기네들이 돌보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신세대를 사는 아이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앞서 살고 있습니다. 현명하고 빠른 정보를 접하며 사는 아이들의 말을 이제부터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ntertainment 까지 곁드려 가며 자기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치우는 아이를 보며 나의 고루하고 틀에 박힌 습관으로 시종일관하는 버릇도 조심하며 고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싱싱한 음식, Organic 음식이 좋다는 충고도 사치스러운 충고라고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뉘우치며 딸아이의 잔소리를 더듬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엄마의 딸 시집살이는 그렇게 끝났더랍니다. 또한 나의 이번 시집살이는 아이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성인이 되었고 엄마 아빠는 아이가 되어간다는 실습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이는 우리 가족이 심고 자라게 했던 부모 자식 간의 깊고 깊은 사랑이며 행복이었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