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잊혀지지 않는 건 같은 이야기일 수 없다. 절대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건만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 해변가에, 파도가 찰랑찰랑 핥고가는 아름다운 바다의 모래톱에 코를 박고 죽어 넘어진 시리아 난민의 아이, 아일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살박이 사내아이의 모습... 스무명의 유치원 아이들, 토끼 사냥하듯 한 명씩 한명씩 이유도 모른채 총에 맞아 죽은, 신문 한면을 가득 채웠던 그 아이들의 웃는 모습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나를 멍하게 만든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눈돌릴 곳없이 들이대는듯한 끔찍한 폭력의 장면들. 투명하고 날카로운 칼날로 소리없이 슴뻑 베어지는 차가운 칼질 같은. 같은 이유로 프란시스 베이건의 그림은 가슴에 바윗돌이 앉은듯 그저 할말을 잃게 한다. 형체를 알수없는, 고깃덩이같은 물체. 교황임을 보여주는 의상을 입고 절규하듯 입을 따악 벌린채 얼굴이 뭉개져 있는 사람. 너무도 지나친 폭력 때문에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려도 소리조차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김기덕과 베이컨의 작품에는 너무 싫어 눈을 감고 싶으리만치 끔찍한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아주 차가운, 아주 잘 정리된, 정말 설명하기 힘든 처연한 아름다움과 진실이 있다. 보고싶지 않아 눈을 돌리는데도 어느 찰나에 가슴 깊히 박혀버린 단도같다. 빼지지도 않고 녹여지지도 않는, 그리고는 그냥 갑자기 생겨난 꼬리처럼 가슴에 철컥 붙어 시도 때도 없이 자기를 돌아봐 달라고 마구잡이로 호령한다. 나는 마조키스트인가? 왜 폭력에의 기억을 먼지 털듯 머리 흔들어 잊을수가 없는걸까? 폭력과 고통은 왜 있는 걸까? 우린 거기에서 헤어날 길이 전혀 없는걸까?
오랫동안 나는 무라까미 하루끼가 싫었다. 겉멋든 젊은이 같이 쿨한 체 하는 것도 싫고 뉴에이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몽환적 분위기도 싫었다. 시시껄렁한 녀석이 트렌디한 글로 돈과 명예를 얻고 젊은 애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정신 버쩍나게 생생히 다가온 것은 마치 신들린듯 집요하게 폭력에 대항하는 그의 글을 읽고부터이다. 그의 수필에도, 소설에도 같은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이차대전때 도저히 승산없는 몽고의 허허벌판에서의 싸움- 노모한 전쟁, 오직 파워에 눈 먼 이들의 이익때문에 자국의 젊은이들을 마치 먼지 부스러기처럼 내몬 그 잔인하고 허황된 전쟁의 잔임함과 파괴력을, 그는 마치 신 내린 무속인의 집요함처럼 달겨들어 파헤친다.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 삶, 사회, 그리고 모든 각각의 인생을 촘촘히 지탱시켜주는 이름 없는 이들 하나 하나에 대한 존엄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인간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이 단지 약육강식의 처절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만 달려간다면 그 삶은 참으로 잔인하고 황량하며 파괴적인 삶이 아닐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안다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쫒을 수 밖에 없고 그럴 때 그는 남의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으로만 자신을 판단하게 된다. 당연히 그는 허영심으로 똘똘 뭉쳐 자신을 방어하며 남을 해치더라도 오로지 이기는 것만을 자존심으로 생각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폭력은 탐욕과 무지의 결합에서 나온다. 그 많은 총기 사건과 테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새로운, 더 효율적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려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 무기를 금지시키는 대신 학교 선생들이 총을 차고 있어야 한다는 넌센스의 의견을 주장하는 철면피적 탐욕... 모든 이가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진정성없이 이 세상의 폭력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새해에는 제발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숟갈 덜먹기, 한 번 양보하기, 한번 더 바보되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총기규제법 좀 통과되면 좋겠다. 새해에는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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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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