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그린 작가, 소똥을 그린 작가가 사라져서 너무 안타깝다.”백정숙 만화평론가가 오세영 화백의 갑작스런 죽음을 비통해했다. 오 화백은 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백 평론가는 6일 뉴시스에 “편찮으셨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형형한 눈으로 웃으면서도 만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던 평소 모습이 떠올랐다”고 슬퍼했다.
“1950-60년대 앵두나무 우물가의 울렁울렁 사랑이야기와 그 마을의 대소사를 오 화백만큼 진지하게 잘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우리시대를 그리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분이 가셨다. 필력은 또 어떤가. 화가들도 부러워했다. 외국에 내놓은 대표적인 한국작가셨다. 비통하다.”후배들에게는 늘 자신을 정진하는 모범적 선배였고, 만화계 구조를 개선하는데 열정적이었다. 바른만화연구회를 시작으로 우리만화협의회를 거쳐 우리만화연대를 창립한 1인이었고 이사로 활동했다.
“이두호 김형배 백성민 이희재 등 윗세대 작가들 가운데 막내셨다. 덕분에 만화계 후배들이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갔다.”특히 후학양성에 공들였다. “후배들에게, 만화라고 그림을 허투루 그리는 게 아니며 그림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해야하는지 늘 강조하셨다. 다른 작가에 비해 작품수가 많지 않은데 옆에서 보기에 (시간이 너무 걸려) 안타까울 정도로 한 장 한 장 공들여 그렸다.”박재동 화백은 ‘조문’에서 “우리만화계의 보물,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 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백 평론가는 “늘 손에서 붓을 놓지 말 것을 당부했다”며 “데생연습을 시켰다. 종이도 연구했다. 어떤 펜과 붓을 써야 그 종이와 조화가 잘되는지 연구하고 자신이 체득한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셨다. 최호철 등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분”이라고 평했다.
1980년대 후반 오세영의 등장은 예술로 만화를 보는데 일조했다. 그는 ‘부자의 그림일기’ ‘고샅을 지키는 아이’등에서 뛰어난 묘사와 연출기법으로 만화의 격을 높였다.
박재동 화백은 이러한 오 화백을 “소똥을 그릴 줄 아는 만화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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