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예전에 음악감상실을 들락거릴 때,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면 한 두 시간 안에 즉각 틀어주는 곡들이 있었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브람스의 실내악곡… 등등. 왜 그런한 곡들이 자주 선택될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사실 설명하기가 조금 곤란하지만 좌우간 DJ의 입장에선 늘 자주 듣는 곡들 보다는 어쩌다 들을 수 있는 곡… 그러면서도 작품성있는 곡들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음악 감상실의 품격을 감안한 처사였다고나할까? 클래식 감상실의 품격이 어느정도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설명이 되든 안 되든 세상엔 품격있는 것들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예술작품, 인격, 혹은 의상이나 취미… 등 인간이 관여된 모든 것들에는 천박함과 품격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명분없는 실리… 혹은 정치라 해도 좋겠지만, 맘에 든다고 무조건 놀아나는 연예인들의 풍속도와 같은 정치(풍토)를 우리는 품격있는 정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가)도 별 다름없을 것이다.
명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했던 예술가들의 작품보다는 비록 아마추어로 남더라도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지켜나갔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설가 카푸카는 법률 회사를 다니다가 결핵성 뇌막염이 판정되자 비로소 회사일을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되어 좋아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강요로 원치않는 법률 공부를 해야했고, 조직 사회 속에서 숨통이 막히도록 일을 해야했던 그에서 사회란 그저 명분을 지켜야했던, 마치 하나의 감옥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랬기에 또한 그것은 지켜야만 했고, 지킬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고뇌이자 삶이었기에… 그의 작품이 감동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얼마나 눈에 아름답고, 미학적이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명분과 한계를 지켜가는 인종과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것을 품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꽤 오래전, 한국의 강동석이란 바이올리니스트가 세계적인 퀸엘리자베스 콩쿨에서 3위에 입상, 한국 음악계가 떠들석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3위라는, 힘든 커트라인을 통과했다는 점도 장했지만 당시만해도 난곡 중의 난곡으로 유명했던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기가막히게 연주, 세계인을 놀라게했다는 점이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곡도 아름답지만 사실 연주자의 피눈물나는 도전정신이 또한 가슴시리게 다가오는 곡이기도 하다.
웬지 모르지만 이곡은 테크닉상에서, 칼날같은 내면의 깊이를 표현함에 있어 연주자들의 초인적인 도전정신없이는 아무나 연주하기 불가능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클래식의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도전이 주는 강인한 아름다움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곡이 손에서 무르익을 때까지, 하나의 칼날이 대장장이의 손에서 날이 설 때까지, 그 오랜 기간의 기다림… 어느날 자정이 넘어 한적한 거리를 드라이브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세상밖으로 이탈하는 듯한, FM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귀기가 서려있었다고나할까… 달빛아래 들려오는 이 작품은 손으로 연주하거나 바이올린 소리가 내는 음악처럼 들려오지가 않았다. 마치 기다리다 지쳐 하나의 꽃으로 태어났다는 달맞이 꽃의 전설처럼… 꽁꽁 얼어붙은 듯한 선율의 애절함은 恨을 넘어서 너무나 초월적이었다. 피처럼 아름다운… 마치 삶에서 누구나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고통에 대한 순수였다고나할까.
세상엔 두 종류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허무와 기다림 속에서 망가지거나 얼어붙은 땅 속에서 싹트는 보리 이삭이되거나… 음악은 결코 품격때문에 사랑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같은) 허무 속에서 아름다움을 싹티우기 위한, 그 긴 시간의 기다림이 기가 막히게… 가슴을 찡하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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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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