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기 논설위원의 淸論直說(청론직설)
이근 서울대 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
▶ 대통령 강한 의지 없으면 획기적인 규제개혁 불가능...4차산업혁명, 바이오 등 중국 선점 안한 틈새공략 필요
재정 쓰더라도 밑빠진 독보다는 디지털인프라에 사용, ‘소부장’ 성공하려면 주52시간·화평법 유연한 적용을
![[인터뷰] “경제 역동성 살리려면 ‘혁신시스템의 실패’ 바로잡아야” [인터뷰] “경제 역동성 살리려면 ‘혁신시스템의 실패’ 바로잡아야”](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9/11/20/201911202151555d1.jpg)
이근 서울대 교수가 지난 15일 광화문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 교수는 “혁신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이제 손을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 기자]
우리 주력산업은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 대한 벤치마킹과 추격을 통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섰다. 최근 10여년간 미래를 이끌 새 산업군은 생기지 않고 대신 후발국의 추격은 맹렬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인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추격연구소장을 맡으며 우리 경제와 산업의 현주소를 ‘추격’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분석해왔다. 최근에는 경제인들의 연구·논의집단인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회장에 취임했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 때문에 신산업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혁신 시스템의 실패’에 처해 있다”며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서도 정부가 이제 손을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재정을 써도 제대로 써야 한다.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도록 신성장 산업과 관련한 디지털 인프라에 돈을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추격의 관점에서 우리 경제를 진단한다면.
△추격의 개념이 모방으로 많이 받아들여지는데 추격이론에서 추격은 격차를 좁히는 것을 뜻한다. 국가(선진·후진국) 간, 기업 간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추격의 핵심은 ‘추격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추격만 해서는 추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추격은 선발자로부터 모방을 통해 배워 시작하지만 선발자와 다른 경제모델이나 다른 경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추격과 추월을 위한 기회의 창은 새 패러다임이 도래할 때 열린다. 새 패러다임 출현기에 선발자는 종종 기존 패러다임에 머물려 하고 선발자가 그 함정에 빠질 때 후발자는 새 패러다임을 먼저 택해 비약할 수 있다. 한국은 이렇게 일본을 추월했다. 디지털 기술이 출현했을 때 일본은 한국보다 10년을 지체했다. 한국이 새 패러다임을 먼저 택해 아날로그에 머무르는 선발자 함정에 빠진 일본을 제친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선발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도 선발자 함정에 빠져드는 것 같은데.
△선발자는 기존 기술의 강자이기 때문에 새 기술이 나올 때 이를 무시한다.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 많은 선발자들이 알면서도 이 함정에 빠졌다. 우리나라도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주력산업에서는 중국 등으로부터 거센 추격을 받고 있고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뒤처졌다. 그것이 수익성 저하로 나타나면서 주가는 몇 년째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주력산업의 현주소다.
-말씀대로 산업 곳곳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것 같다.
△한국이 일본을 추격할 때를 보면 정보기술(IT)처럼 사이클이 짧은 산업은 추격이 빨랐다. 중국도 이런 부분은 빨리 추격을 하고 있지만 사이클이 긴 소재·부품 등은 속도가 느리다. 한일 간 추격패턴이 한중 사이에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한국을 아직 추격하는 산업도 있지만 전기차나 IT 서비스, 공유경제, 모바일, 핀테크 등의 신산업은 우리가 진입이 늦은 사이 중국이 추월해 선점했다. 자동차만 봐도 가솔린차는 한국과 격차가 있지만 중국은 이를 건너뛰어 바로 전기차로 갔고, 이제 한국보다 전기차 시장이 커졌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비약 전략’을 쓴 것이다.
-우리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는 어떤가.
△반도체는 새로운 세대기준이 나오면 기존 칩은 시장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중국이 로엔드(저사양) 칩을 갖고 들어오는 전략을 쓸 수 없다. 중국도 그것을 알고 세대를 건너뛰는 비약 전략을 하려 한다. 위험이 크고 돈도 많이 들어 쉽지는 않다. 이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는 우위를 가질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틈새시장에 들어올 수는 있다. 주문형 반도체의 경우 지금은 경쟁자가 대만이지만 결국 중국이 될 것이다. 메모리보다 (추격) 속도가 빠르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은 우리가 추격자가 아닌가.
△부품·소재 산업의 특성상 추격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을 잡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이다. 추격이 더딘 참에 일본이 이번에 한국에 태클을 건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부품·소재는 한국이 오랜 기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추격해온 분야다. 우리가 이 기술과 시장을 잡으면 중국이 쉽게 따라오기 어렵다. (최근 펴낸 ‘2020 한국경제 대전망’에서도 강조했듯이) 정부가 소부장에 투입된 돈만큼 효과를 내려면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을 유연하게 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우리 산업 전반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중국은 각 산업의 1등이 5년마다 바뀐다. 굉장히 다이내믹한 경제구조다.
반면 한국은 산업별 1등이 그대로다.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업의 책임이 아니라 규제환경이 문제다. 새로운 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 경제개발에 이용되는 모든 리소스(자원·재료 등)를 정부가 갖고 있다. 추격시대의 유산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 손을 놓아야 된다. 기득권처럼 돼 관료들이 손을 놓지 못한다. 이러니 기업들이 해외로 가는 것이다.
-규제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획기적으로 네거티브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 몇 개 열거한 것 빼고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보다 근본적 변화다. 쉽지 않은 과제인데 결국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해야 한다. 임기 초반 힘이 좋을 때 해야 하는데 후반기여서 늦은 감이 있다. 다만 경제가 좋지 않으니 도리어 이를 명분으로 도전에 나설 수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라도 규제를 깨자고 외쳐야 한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다른 필요한 전략은.
△삼성의 초격차 전략처럼 투자를 한발 앞서 하는 것이다. 중국보다 더 빨리 달려가든지 아니면 새 분야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 신산업은 중국이 선점해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 한 분야가 바이오다.
바이오는 한국이 기회를 잘 잡은 산업이다. 바이오 신약도 도전하지만 바이오시밀러를 먼저 키워야 한다. 시밀러는 한국이 처음 개발해 굉장히 유망하다. 성공 확률도 신약은 5%가 안 되는데 시밀러는 현재까지 100%다.
-4차 산업혁명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나.
△틈새를 찾아야 한다. 넓게 봐서 4차 산업혁명 5대 기술(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프린팅, 빅데이터, 클라우드)에 들어 있지 않은 디지털 헬스 시스템 같은 것이 노릴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은 의료기술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데이터베이스(DB)도 다 있다.
He is…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관악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국제슘페터학회(ISS) 회장을 지냈으며 비서구권 대학 교수로는 처음으로 국제슘페터학회에서 수여하는 슘페터상을 받았다. 최근 호암상·청암상과 더불어 3대 학술상으로 꼽히는 경암상의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비교경제연구센터장과 경제추격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달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회장에 취임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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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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