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포함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익이 없는 한 아무 말이 없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회를 찾는다”고 팔레스타인 계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는 말한다.
유럽인들은 기선을 발명하고 첫 번의 근대산업으로 노예시장을 열어 풍요를 누렸다. 이에 대하여 세계의 지식인들은 물론 종교지도자들까지도 힘의 논리 때문에 아무 말이 없었다. 이와같이 유럽의 위정자들과 지식인들이 진리와 도덕은 개인의 감상용으로 제쳐두고 세계 제패를 위한 침략에만 연연한 시대가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영국과 미국이 제공한 막중한 철물과 연료를 가지고 러시아와 중국을 친 일본 제국에게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황후를 폭력으로 죽이고 증거 인멸을 위해 불로 태워 궁전 안 우물에 던져 묻었고 한일합병 문서를 위조하는 한편 후유증을 고려해 황제를 극약으로 암살했다. 일제는 영국과 미국의 비호 아래 못하는 일이 없었다.
이에 저항하여 당시 우리 민족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 3.1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민족자결에 따른 평화를 세계 열방에 부르짖었으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백성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난 수많은 의 병과 광복군의 무용 활동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 광복군은 중국 팔로군에 편입되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일 전에 무수한 공적을 올려 오늘의 연변을 중심으로 광활한 자치구를 이룩한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유럽 동부전선 소비에트에서도 연합군에 참전한 우리 젊은이들은 이데올로기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종혐오주의 나치군과 레닌그라드에서부터 볼가강을 누비며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침략군을 격퇴했다. 이러한 희생의 공적이 없었으면 미국이 무슨 재주로 승리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 경찰국가를 자칭하고 있는 미국이 빈곤한 약자들의 희생에 고마워하지를 않는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편견과 야스구니 비호에 연연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중에 수많은 소수민족의 탄식이 있는 줄을 모른다. 미국이 이러한 차별을 계속한다면 세계 여러 곳에서 성전(Holy War)이라는 이름으로 비열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되고 미국인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애꿎은 양민들만 쓰러져 가는 어두운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세태 앞에서 소위 지성인이란 사람이 미국의 헌법 기초를 이루는 청교도 정신을 질문하려는 기색은 없고 도리어 “한국인들은 야스구니 신사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2001년 9월 6일자 오피니언 참조)고 말한다. 포츠담에서의 남의 나라, 남의 식구들을 둘로 가른 비극에 대하여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땅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고도 주일이면 청교도의 신앙을 계승하여 예배하는 민족의 입을 봉해놓고 현대판 노예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약자를 멸시하는 ‘푸른 눈동자’의 오만이 제3의 가미가제 펄 하버를 불러온다. 찰머슨 존슨이 말한 대로 미국은 자신이 비호한 나라 때문에 역 타격(Blow back)의 값을 받는다. 미국이 진정 자국민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원한다면 더 이상의 편견이나 이중성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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