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정성 없이는 제맛 안나
신영인씨(74)는 매년 겨울 콩으로 메주를 쑤어 된장을 담근다.
한국서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된장 담그기를, LA 한복판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하는 이유는 방부제와 설탕, 미원이 많이 들어간 파는 된장들에 질렸기 때문. 항암효과 최고라는 우리의 건강식품, 진짜 된장의 참 맛을 모른 채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입맛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 16년이 됐다.
신씨의 된장 담그기는 보통 10월초부터 1월말까지 넉달 걸린다.
메주콩 60파운드짜리 포대를 60개 사다가 메주를 쑤어 담그는데 엄밀히 말하면 막된장이다. 간장을 빼지 않고 만드는 된장이라 맛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 넉달의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콩 삶아서 찰지게 친 후 네모나게 메주를 빚고 햇빛에 널어 말린다. 적어도 한달은 말려야 하는 메주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매일 날씨를 잘 보고 있다가 비가 올라치면 들여놓는 등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한다. 지난 겨울엔 다행히 비가 안 와서 한번도 안 맞혔다고 한다.
이렇게 말린 메주를 공기가 안 통하는 큰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두면 서로 열을 내면서 자연발효가 시작된다. 이 과정을 ‘메주를 띄운다’고 하는데 한 30일 띄운 후 메주를 깨끗이 물로 솔질해 씻어서는 4등분하여 다시 1주일동안 말린다. 띄운 곰팡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렇게 준비된 메주에 삶은 메주콩과 삶은 보리쌀을 같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걸죽하게 버무린 것이 막된장이다.
메주, 삶은 콩, 삶은 보리쌀의 비율은 1 대 1 대 1로 모두 같으며 소금물은 짭짤하게 섞어야 한다. 적당한 소금물 농도는 날계란을 넣어보면 된다. 넣었을 때 계란 머리가 물위로 올라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싱거우면 가라앉거나 반만 뜨기 때문.
막된장은 독이나 적당한 용기에 담아 뚜껑을 덮어놓고 적어도 1년은 묵혀야 제 맛이 난다. 방부제를 안 넣기 때문에 위에 곰팡이가 피기도 하지만 다 걷어내고 먹으면 된다.
“원래 시골에서는 할머니들이 눈 오는 날 메주를 쑤었습니다. 날 좋은 때 메주를 쑤어 금방 마르면 맛이 들지 않기 때문이죠. 처마 끝에 매달아 몇 달이고 바람 맞혀가며 말려둔 메주를 따뜻한 곳에서 가마니로 덮고 한달을 띄워서 담가야 진짜 칼칼한 된장 맛이 나거든요.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 요즘은 한국서도 이렇게 담그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보통 대량생산되는 된장은 밖에서 한달이상 말리는 과정과, 또 한달이상 자연발효되는 과정을 생략한 것. 온실에서 2~3일만에 말려내고 발효 역시 효모를 넣고 온실에서 3일만에 마친 후 방부제를 넣어 파는 것이다. 햇빛을 보지 못한 메주는 고랑내가 나는데다, 방부제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설탕과 미원을 많이 넣는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가 담근 된장은 딸과 함께 운영하는 풍년떡집에서 김치 반병짜리를 15달러에 파는데 10년 단골들이 줄을 이어 내놓기가 무섭게 팔린다. 올겨울엔 50갤런들이 드럼통으로 17통을 담갔으니 내년 봄엔 좀 넉넉하려나. 그래도 “인건비도 안나오는 일을 저렇게 하신다”고 딸 준 김씨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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