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공산당이 집권하기 전까지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은 유교였다. 그러나 항상 유교가 중국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아니다. 맹자가 태어났을 당시인 기원 전 4세기 경에는 이기주의를 주창한 양자와 이타주의를 주창한 묵자의 추종자들이 공자 숭배자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맹자’에도 "양묵의 학설이 천하를 덮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두 학설을 잠재우고 유교를 중국의 지도 이념으로 세운 것은 맹자의 공이다. ‘맹자’는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도 사서삼경 중 가장 유려하고 힘이 있어 패기 있는 젊은이들에게 사랑 받는 작품이다.
’맹자’의 대표적 구절의 하나는 맨 처음 양 혜왕이 맹자에게 "불원천리하고 오셨으니 나라를 이롭게 할 어떤 계책이 있으십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익만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한다. ‘하필왈리’(何必曰利)로 불리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으로 인과 의를 버린 자는 왕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대목이 있다. 제 선왕이 "신하가 폭군인 걸왕과 주왕을 죽이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묻자 "인과 의를 저버린 자는 왕이 아니라 필부에 불과합니다. 필부 걸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왕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지금부터 2,300년 전의 이야기다.
부시와의 정상 회담을 위해 첫 미국 행 비행기를 탄 노무현 대통령이 10여 시간 동안 ‘맹자’를 읽으면서 왔다는 소식이다. ‘미 건국 이념에 관한 가장 뛰어난 해설서’로 불리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나 미국의 에센스를 담은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같은 책을 놔두고 하필 왜 ‘맹자’를 택했는지는 미스터리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간이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함’을 천명한 미국의 건국 정신과 ‘정치의 목적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인과 의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며 ‘인과 의를 저버린 왕은 이미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맹자의 생각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노무현-부시 회담의 핵은 북한의 핵이다.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 주도의 연방 의회에서는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지 않고는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폭 넓은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 김정일은 인과 의를 저버린 독재자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그를 거세하는 것이야말로 인과 의를 실천하는 길이며 한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첩경이다. 부시와의 회담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맹자의 메시지를 되씹어 보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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