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업소의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빨리빨리’이다. 그 사람들이 자기네 문화대로 느긋하게 일하는 꼴을 한인업주들이 못 봐주고 ‘빨리빨리’ 하라고 고함지른다. 이국땅에서 빨리 성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한인들은 대체로 매사에 차분히 기다리지 않고 서두른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이다.
사람의 체질은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대체로 다혈질에 속하며 외향적, 낙천적, 적극적 성격이다. 호기심이 많고 환경에 잘 적응하며 남에게 먼저 말을 걸고 상대방의 말에도 즉각 반응한다.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하며 끊임없이 새 계획을 추진한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단체 리더들 중엔 다혈질이 많다.
하지만 다혈질은 화가 나면 전혀 딴 사람이 돼버리는 결점이 있다. 직장에서 평소 휘파람을 불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겉잡지 못하게 분노를 터뜨린다. 거의 폭탄이다. 주위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아랑곳 않는다. 생각한 뒤 행동하지 않고 행동한 뒤 생각한다. 소위 ‘욱’하는 성격을 가진 다혈질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 욱하는 성격을 억누르지 못해 낭패를 당한 한인 젊은이가 있다. 평소 로맨틱한 자신의 모습답지 않게 홧김에 주먹을 단 한번 휘둘렀다가 교도소에 갇힐 위기에 처해 있다. “왜 그때 조금만 더 참지 못했나…”라며 지금 가슴을 치고 후회할 터이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회한의 아픔을 겪은 한인들은 나를 포함해 한둘이 아닐 듯하다.
지난주 시애틀의 킹 카운티지법에 2급 폭행죄로 기소된 김씨(31)는 운이 나빴다. 한달 전 어느 늦은 저녁에 여자친구와 ‘타이태닉’(3D)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가 기분을 잡쳤다. 주위의 젊은이들이 영화상영 도중 서로 팝콘을 던지며 소란을 피웠다. 팝콘이 몇줄 뒤 좌석에 앉아있던 김씨의 얼굴에까지 날아왔다. 전혀 영화를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씨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또한번 조용히 해달라는 말에 상대편 젊은이들이 웃자 김씨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좌석을 넘어가 일행 중 한명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젊은이들이 우르르 퇴장하고 영화관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김씨도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다. 경찰관이 그를 영화관 로비로 불러내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컴컴한 영화관에서 나온 뒤에야 자기에게 맞은 사람이 10살 소년이며 그의 이빨 한 개가 빠져나갔고 코피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년은 김씨가 왜 자기를 때렸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김씨는 홧김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갈겼다고 시인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2급 폭행죄가 확정될 경우 3~9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욱하는 성격의 대가를 김씨보다 더 가혹하게 치른 사람들도 있다. 엊그제 오리건주 세일럼에서는 부부싸움을 벌인 백인 가장이 부인과 어린 자녀 4명을 총격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후 도주하다가 차 안에서 자살했다. 이혼요구를 받고 홧김에 부인 몸에 총탄세례를 퍼부어 벌집을 만든 시애틀 인근의 한 백인도 22일 재판에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욱하는 성격은 일종의 병이다. 어려운 의학용어로 ‘간헐성 폭발적 인격장애’이다.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뇌의 충동조절 중추인 변연계나 대뇌 일부의 고장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민1세인 김씨는 폭력을 용인하는 편인 한국 사회분위기에 영향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를 다룬 미국인 경찰관은 32년 경력에 극장에서 사람을 때린 관객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욱하고 화를 내면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성인병(고혈압, 당뇨, 심장병)에 걸리기 쉽다는 게 정설이다. 전문가들은 화날 때 10초동안 수를 세며 뒷감당을 생각할 것, 일단 대화를 중단할 것, 명상(복식호흡법)으로 안정을 회복할 것 등을 권한다. 히스패닉 종업원들에게 ‘빨리빨리’ 대신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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