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정원사에 있을 때, 어느 젊은 불자 부부가 찾아왔는데, 정윤스님이 나보고 대면을 한번 해보라고 해서 이야기를 해보니, 처사님께서 원인 모르게 계속 몇 달째 아픈데 아마도 집에 있던 큰 나무를 함부로 베어서 그렇지 않은가를 걱정하기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약으로도 듣지 않는다니 할 수 없이 그 집에서 고사지낼 것을 권했다. 고사告祀라는 것은 새로 이사를 가게 되면 사는 동안 아무 탈없게 하기 위해서 공양을 차려놓고 독경을 하거나, 일년에 한번씩 하거나, 집안에 환란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리의 옛 선인들이 해오던 의식이다. 고사의 독경은 그 주위의 모든 잡신들의 침범을 막고 선신들을 초빙하여 대접하는 의식이다. 고사가 끝나고 난 음식은 아무때 아무데서나 먹어볼 수 없는 것이기에 귀한 것으로 여겨 여러 사람이 갈라먹었다. 고사의 음식은 원칙대로 헌식을 하지 않고 먹을 경우 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여법하게 의식을 집전하고 제대로 헌식을 한 다음 먹으면 절대 탈이 없을 뿐더러 아주 좋다. 그래서 음복飮福이라 한다.
그 젊은 부부께서는 고사를 지내기 전, 나와 정윤스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점심공양을 대접해 주었는데 그런 대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절로 돌아와 날짜를 잡아 그 집에서 고사를 지내줄 것을 마음먹었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 그 집에 가서 고사를 지내주고 나니 그 젊은 부부는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언제 다시 우리를 초청하여 공양을 한번 대접하겠노라고 연신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
그 일이 잊혀져갈 무렵, 그 젊은 부부가 밝은 얼굴로 정원사를 찾았다. 주지스님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부엌에 가서 재료가 있는 대로 대강 음식을 준비하여 그 두 분과 함께 점심공양을 했다. 그런데 부인께서 하시는 말씀 “저희가 스님들을 초빙하여 공양을 한번 다시 집에서 대접하려했는데 취소해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점심을 먹어보니까 이렇게 맛있는데 저는 준비할 엄두가 안 납니다”한 이후로 다시는 그 젊은 부부한데서 공양을 받아보지 못했다. 사실 고사 지내기 전, 그 집에서 공양할 때 보니 부인이 직접 만든 것 보다는 모두 다 밖에서 사서 가지고 온 음식이었다. 그 보살님께서는 집에서 음식을 거의 안하므로 겁이 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음식 해주고 음식을 못 얻어먹는 격이 되었으니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조심하여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실 그렇다. 너무 완벽해도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며, 너무 원리원칙만 따져도 사람이 멀리하는 것처럼, 알지만 모르는 것 같이 눈감아 넘어갈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조금 잘못되더라도 가능하면 칭찬을 하면서 웃음이 있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돈 드는 일이 아니지만 칭찬에 너무 인색한 사람이 많이 있음을 본다. 나는 누구나 만나면 칭찬을 하며 살라고 당부한다. 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린애가 첫 걸음 걸을 때, 완벽한 걸음이 아니지만 부모는 그저 아이가 발 떼는 것만도 신기하여 칭찬하며 웃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나 그런 길을 지나왔음을 상기하며 칭찬하는 마음을 갖자.
Sep 4.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