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뉴스에 중독됐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아 포털사이트와 SNS를 훑으며 새 소식을 검색한다. 출근길 지하철, 버스에서나 회의시간, 강의시간 등 일상에도 뉴스가 함께한다. 그런데 정작 그 뉴스를 만든 기자의 이름은 기억에 없다.
기자들은 기사 뒤에 가려져 있었다. 본인이 아닌 기사를 돋보이게 해 몸담은 언론사와 자신의 명성을 쌓던 시절이다. 당시는 기자의 무게감이 곧 신뢰감이라는 도식이 있었다. 이것이 철지난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기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무거운 이미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 등장한다. 최근 막을 내린 SBS TV 드라마 ‘피노키오’와 종영을 눈앞에 둔 KBS 2TV 드라마 ‘힐러’가 보기가 될 수 있다. 이들 드라마는 기자를 소재로 활용하면서 그들의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를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거악에 맞서 열정과 정의감으로 분투만 하는 과거 ‘지사형 기자’ 관련 콘텐츠들과 달리 작품의 톤이 옅은 이유다.
배우 정재영(45)과 박보영(25)이 출연을 확정한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감독 정기훈)는 한발 더 딛는다. 스포츠지 연예부 수습기자가 된 ‘도라희’와 직장상사 ‘하재관’이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이 코미디영화의 원저자는 기자다. 원작인 동명 소설은 생활인으로서의 기자를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평을 들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신문을 사야만 기사를 접했다면 최근에는 누구나 각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를 접할 수 있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자에 대한 환상도 옅어진 것이다. 최근의 기자 관련 콘텐츠는 이 같은 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변화에 맞춰 각 매체가 기자를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한 기자는 “예전 언론사에서는 자사 기자가 TV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언론사가 난립하는 상황 속에서 회사를 알릴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몸값을 올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각 매체는 기자를 주로 공신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썼다. 기자들이 하는 말들의 무게를 통해 논리와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구색을 갖추는 식이었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기자들의 멘트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등의 등장으로 매일 반복되고 있는 뉴스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자사 아나운서를 띄우기 위해 각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던 방송사들이 뉴스경쟁 구도를 맞아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기자 띄우기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은 최근 여섯 명의 자사 기자들과 기존 멤버들이 짝을 이뤄 미션을 진행하는 ‘기자 특집’ 녹화를 마쳤다. 무게감을 걷어낸 기자들이 멤버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사람 냄새를 풍겼다는 뒷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오후 8시부터 100분에 걸쳐 뉴스를 내보내는 등 뉴스 보도에 힘을 준 JTBC도 사회부 소속 기자를 자사 대표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내보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이런 경향에 대해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기자가 흔해진 현실이지만, 대중에게는 아직 새로운 것”이라며 “최근의 언론 상황들도 고려하면 스타 기자를 만들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보도 내용의 확인, 공신력 확보 등의 수단으로 활용되던 기자들이 이제는 스스로 목적이 되기 시작했다. ‘저널테이너’(저널리스트+엔터테이너)라는 조어가 유행할 날이 머지않은 모양새다.
<오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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