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냄비가 등장했다. 그 빨간색이 잿빛 하늘의 싸한 날씨와 대조를 이룬다. 찬 공기를 가르며 종소리가 울려 펴진다. 문득 겨울이 느껴진다.
정초(正初)다 싶은데 봄은 달아났다. 여름이지. 아니, 가을이다. 그리고 어느 틈에 또 다시 빨간색 냄비다. 세밑인 것이다. 세월이 무섭게 달려간다.
그리고 보니 추수감사절이 내일 모레…. 가만 있자, 그러니까 시즌 초입이다. 망년회 시즌. 한 해를 그냥 보낼 수야 없지. 만나야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다. 주름이 깊어졌다.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반가운 얼굴이다. 정담이 오간다. 먹고, 마신다. 노래하고, 춤춘다.
동창 망년회다. 직장 모임이다. 또 무슨 망년 모임이더라. 그런데 어찌 보면 존재의 과시장 같기도 하다. ‘나 아직도 살아 있소’ 하는.
폭탄주 종류만 80여개에 이른다고 하던가. 세계 제2위 음주국 이라지. 지금쯤은 1위가 됐는지도 모르지만. 전 세계 위스키 업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도 들린다. 지난해에 밸런타인 인가 뭔가 하는 고급 위스키의 40%를 사들였다니까.
한국 이야기다. 위스키에 흠뻑 취한 한국의 술 문화의 이모저모다. 이건 그렇지만 LA 이야기이기도 하다.
파괴적 술 문화, 세상을 황폐시키고 있는 한국형 술 문화가 그대로 범람하고 있는 데가 LA 한인 사회니 하는 말이다.
사람이 술을 마신다. 술이 술을 마신다. 그보다도 술이 사람을 마실 지경이다. LA의 연말 풍속도다.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온통 회색이다. 스산하고 음울하다. 세밑의 또 다른 풍속도다. 날아드는 소식은 쓸쓸하기만 하다. 되는 일도 없고. 혼자 있다보니 가족 생각, 한국 생각만 간절하다.
남들은 먹고 마신다. 밝고 따뜻한 방안에서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바라본다. 추위가 더 매섭게 파고든다.
세밑을 재촉하는 훤소(喧騷). 그 가운데 울리는 종소리다. 들릴 듯 말 듯하다. 빨강 색 냄비 안에는 1달러짜리 지폐들이 하나 둘 정성스레 접혀 있다.
친구도 만나야지. 망년회도 가야겠고. 산다는 게 그런 거니까. 그렇지, 사랑의 종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지. 그리고 작은 정성이지만…. 사람이 산다는 게 그런 거겠지.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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