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의사인지 의료 테크니션인지 그의 머리를 뒤지는 고무 장갑 낀 손만 보였다.
아마 이( )를 뒤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시에 따라 입을 크게 벌이고 있는 모습은 뭐라고 할까. 고마워하는 건지, 체념을 한 건지 구별이 안 된다.
몹시 지쳐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졌다. 빗질한 지 오랜 것 같다. 거칠게 자란 구레나룻은 인도의 거리 수행자를 연상시킨다. 홈리스 피플이 따로 없다.
TV에 비친 사담 후세인의 모습이다. 어이가 없어 동정심이 들 정도다. 고대 바빌론 제왕 네브카드네자르의 현신. 현대판 살라딘. 아랍의 긍지. 온갖 영광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후세인이었다.
이런 그가 마치 경찰보호를 받는 홈리스 피플처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도에 따르면 잡힐 때 후세인은 총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나이프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전혀 저항이 없었다. 그리고 취조하는 미군에 지극히 협조적이었다는 거다.
24년 동안 이라크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독재자치고는 너무 나약한 모습이다. 총도 있었다는데 왜 체포의 손길이 닥치기 전에 ‘명예로운 자살’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지하 은신처에서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미군의 움직임을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아무 저항 없이 체포에 응했다. 왜.
후세인은 계산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제부터는 다른 형태의 저항을 할 때다. 전술의 변화를 택했다는 풀이다. 법정에서 탄압 받는 모습을 통해 정치 공세를 편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그보다는 독재자의 본성을 보여준 데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일 수록 죽음을 더 무서워한다. 헤밍웨이가 일찍이 그려낸 잔인한 자의 내면이다. 남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또 많은 생명을 해친 자일수록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더 심하다는 것.
스탈린처럼 국민을 억압했다. 그 결과 수십만 생명이 희생됐다. 조금만 의심이 나도 가차없다. 친족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스스로도 사람을 쏴 죽였다.
이런 그에게 절대절명의 순간이 닥쳤다. 그 상황에서 결국 본색이 드러났다.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는 라이온의 본색이 아니다. 들쥐의 본색이다.
후세인 체포는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 것 같다. 무자비한 독재자는 사실에 있어 가장 비겁한 자라는 사실 말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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