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의 왕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이다. 아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날 운명을 타고난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모든 삼킴으로써 이를 모면해보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아내 레아가 돌을 싼 보자기를 제우스라고 속여 먹였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아버지로 하여금 삼킨 자기 형제 자매들을 모두 토해내게 만든 후 싸움을 벌여 크로노스와 그 편을 든 타이탄들을 쫓아내고 왕좌를 차지한다.
크로노스로서는 억울했겠지만 별로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도 아버지 우라노스를 축출하고 권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쫓아내는 것에서 한 술 더 떠 낫으로 아버지를 거세함으로써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하게 했다. 그 때 바다의 거품에 떨어진 핏방울에서 생겨난 것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그리스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외디푸스’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는 이야기다. 신화에 나타난 모습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 사회는 세대간의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최근까지 한국을 포함한 중국 문화권에서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세대간의 알력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효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어른’이 하는 말씀은 좀 잘못되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 것 같다. 외신이 전하는 한국 선거 분위기를 보면 세대간의 갈등이 과거 선거판을 좌우하던 지역 갈등을 누르고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할아버지와 손자가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놓고 말다툼을 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60~70대에게 가장 큰 경험은 8·15 해방과 6·25 사변이다. 이들에게 일제의 학정과 김일성의 만행, 그리고 이 두 악을 제거하는 데 기여한 미국의 힘은 이론이 아니라 피를 흘리고 살을 베어 얻은 생생한 체험이다. 반면 지금 상당수 30~40대에게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 체제와의 투쟁이 인생의 좌표를 좌우한 경험이다. 이들에게 8·15와 6·25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며 이를 입에 담는 사람은 ‘수구 꼴통’에 불과하다.
인간은 누구나 시대의 산물이다. 자기가 자라난 환경과 경험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인뿐이다. 자기가 경험한 진리의 일면을 진리의 전부로 착각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만 대화는 가능하다.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온다... 과거 일어났던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며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아무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음에 오는 세대도 다음에 올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도서의 작자는 수 천년 전 적었다.
지금 부모 세대를 공격하는 젊은 세대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되고 자녀들로부터 ‘수구 꼴통’으로 공격당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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