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멤버 2명을 주축으로 아시아계로만 이뤄진 힙합그룹 ‘파 이스트 무브먼트’(이하 FM)는 빌보드 싱글 핫 100 정상 등극을 계기로 미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며 최근 미국 음악계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핫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LA 한인타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 그룹은 한인사회와 한인 팬들의 뜨거운 관심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제임스 노(한국명 노지환·예명 프로그레스)씨와 제이 정(한국명 정재원·예명 J-스플리스) 등 멤버들로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과 소감, 스타로서의 삶 등 ‘FM’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형재 기자>
"무명생활 7년.. 인기보다 음악 매진"
-지난 9월15일 할리웃 클럽에서 만난 이후 두 달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본다. 지난주 LA에서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선 긴 줄을 보고 고마움을 느꼈다. 요즘은 동부와 서부를 돌며 공연 중이라 공연장에서 느끼는 반응이 인기의 전부다.
처음엔 꿈을 꾼 듯 믿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멤버들끼리 어떻게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잡을까 고민한다. 흔들리지 말자고 자만하지 말자고 다그친다. 지난 7년의 무명생활에서 배운 것은 인기란 높을 때도 떨어질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려고 노력 중이다. 인기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이 우선이다.
-두 달째 각종 음악관련 순위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다. 한인들은 ‘로또 당첨’이라며 놀라워한다.
▲이번 곡이 좋았지만 빌보드 1위까지 갈 것이라곤 정말이지 상상하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 준 점에 감사하다. 빌보드 1위는 분명히 우리 멤버 모두에게 자극을 준다. 요즘은 앨범 프리 와이어드(Free Wired)에 수록된 ‘로켓티어’(Rocketeer)가 ‘라이크 어 G6’ 인기를 이어가 기분 좋다. 로또 당첨이라… 보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멤버는 LA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7년 동안 활동해 왔다. 분명한 건 지금 인기보다 지난 7년이 더 소중한 경험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음악에 초점을 맞춰 더 열심히 해서 또 한 번 넘버원 소리를 듣고 싶다.
-누가 가장 기뻐하는가
▲멤버들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나는 음악을 하신 아버지께서 J-스플리스는 어머니께서 더 좋아하신다. 지난 9월 초 한국일보에 빌보드 진입 기사가 나갔을 때 많은 친구들이 전화해 줬다. “한글 읽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 알고 전화했느냐”고 했더니 사진 보고 알았다며 축하해 줬다. 우린 변한 게 없다. 친구들과는 똑같이 지낸다. 매일 문자와 이메일로 연락한다. 친구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었으면 파 이스트 무브먼트는 없었을 것이다.
-무명시절 7년이란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초창기 LA 한인타운 윌셔와 웨스턴 거리, 지금은 식당으로 변한 아틀라스(Atlas)란 허름한 클럽에서 자주 공연했다. 낮에는 멤버들 각자 오피스 매니저, 서킷시티 종업원 등으로 일했다. 다들 일 끝나고 모여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음악 작업과 연습에 들어갔다. 처음엔 음악 작사ㆍ작곡, 기획, 홍보, 공연장까지 다 우리 몫이었다. 어디서 우리 인터뷰 좀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간절했으니까. 돈이 떨어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멤버들 모두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형제처럼 동고동락해서 팀웍이 좋다.
-파 이스트 무브먼트에 LA 한인타운이란 어떤 곳인가.
▲LA 한인타운은 우리 음악이 시작한 곳이고 우리가 성장한 곳이다. 또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갈 집이기도 하다. 성장배경이 된 곳의 문화가 음악에 담기는 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인간관계, 음악공연 등 한인타운과 LA 다운타운의 문화를 노래로 보여주고 싶었다. 무명으로 활동할 때 한인 커뮤니티가 많이 도와줬다. 한인타운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우리를 많이 불러줬다. 그런 공연에서 수익금을 얻었고 당연히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창기 때 우리가 가장 바라던 꿈이 뭐였느냐면 한인타운 윌셔와 웨스턴 거리의 ‘윌튼극장’에서 공연해 보는 거였다. 아직 꿈을 못 이뤘다.(웃음)
-앞으로 활동계획은
▲지난 1년 동안 새 앨범 프리 와이어드를 준비해 왔다. 전 세계에 우리 음악을 알리고 싶다. 체리트리 레코드사와 계약으로 우리가 음악 아이디어를 내면 최고의 뮤지션들이 제작을 담당한다.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겠다. 아시아에서도 연락이 많이 오는데 사실 감동이었다. 최고로 성장해 보답하겠다.
빌보드 핫 100 1위 등극 이후 월드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멤버들. 왼쪽부터 J-스플리프(제이 정), DJ-버만, 프로그레스(제임스 노), 케브니시
제임스 노씨의 아버지 노형건씨
"부모로 처음엔 반대"
"변호사 자격증 딸 것"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성공을 지켜본 이 중 감회가 남다른 이는 다름 아닌 제임스 노(프로그레스)씨의 아버지 노형건씨다. 라디오서울(AM1560) ‘홈 스위트 홈’의 명 진행자로 잘 알려진 노형건씨는 “제임스와 재원이(J-스플리스)가 다른 친구들이 힙합 음악을 한다고 나섰을 때 한인 부모가 그렇듯이 반대도 많이 했다”며 “내가 음악인의 길을 걸어 봐서 안다. 희비가 많이 교차하고 힘든 이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누구라도 반대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대를 한 지 7년 후 그 아버지는 아들과 그 친구들이 빌보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적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고 했다.
7세 때 이민 와 LA 한인타운에서 성장한 제임스 노씨는 UCLA 정치학과를 나와 로욜라 법대를 졸업했다. 힙합 스타로서는 특이한 이력의 노씨는 친구들과 함께 이끌린 음악의 삶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경험을 한 것이다.
아버지 노형건씨는 “아들과 친구들은 대책 없이 음악만 고집한 게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을 꿈꿨다”며 “앞으로 한인사회에 꾸준히 봉사하고 성공이 자만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 제임스 노씨는 “지금은 음악활동으로 바쁘지만 시간이 나면 변호사 자격증도 꼭 따겠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힙합 스타 제임스 노씨와 아버지 노형건씨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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