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5년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신 지 벌써 35년이 된 것이다. 어머니 나이 38, 9세 때이다. 요즈음 세대로 40전이면 아직 한참 때이다.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나 재혼을 할 수도 있는 나이이다.
인생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이다. 그 젊은 나이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오직 자녀들만 바라보고 키우시며 살아 오셨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모든 삶의 전체가 자식들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이 다 잘되어 어머님을 편히 모시면 어머니의 헌신해 오신 일생에 보답해 드릴 수 있으련만 아직도 어머니는 오히려 자식들 걱정을 하고 계시니 불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4월 한식을 겸하여 어머니는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몇 번인가 이장하며 편히 쉬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묘 자리를 걱정하다 못해 당신 스스로가 그 자리를 마련하셨다.
시골 고향 작은 집의 자그마한 산자락에 아버지의 영원한 자리, 당신이 돌아가시면 함께 묻히실 자리를 마련하신 것이다. 그나마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도 않으시고 혼자서 조금씩 모아 둔 돈으로 모든 준비를 하신 것이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당일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아버지 산소를 이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물론 어머니 돌아가시면 함께 묻히실 빈 관까지 묻어 두었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많은 세상에 돌아가신지 35년이 되신 아버지의 얼굴을 어머니는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다른 자리에 당신이 묻히실 자리를 마련치 않고 한 봉분아래 그 옆에 나란히 눕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시집 오셔서부터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던 어머니. 시집살이, 농사 일, 아버지와의 헤어짐(일제시대 때 남양 군도에 5년간 소식없이 다녀오심), 다녀오셔서 병을 얻어 오신 아버지의 병 구완으로 15년 여를 살아오시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자식 5남매를 위해 오직 일 밖에 모르시고 잡수시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당신 한 몸 가꾸지 못하시고 살아오신 어머니.
아직도 자식들 제대로 된 모습 하나 보지 못하시고 마음 속에 근심과 걱정 떠날 날이 없으신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당신이 누우실 자리를 어찌 어찌 마련하셨지만 아직도 자식들 발 편히 펴고 쉴 자리 마련 못한 모습을 보시고 어찌 편히 눈 감고 쉬실는지 그게 걱정이다.
집안이 넉넉지 못하고, 자식들 중 가진 것 제대로 없지만 마음 나누고, 정 나누며 사랑 안에 화목하게 사는 것이 제일로 알아 그것을 최고의 재산으로 알고 살아온 가족들이다. 그리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신 분도 어머니이시다.
“어머니, 당신도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자식들 건강하게 키우시고 이렇게나마 사는 모습을 보신다면 살아남아 있는 자식들 또한 그렇게 잘 살아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고 남은 여생 편히 사시다 당신 손수 지으신 그 집에서 편히 쉬시기만을 자식들 간절히 바랍니다.”
2) 5월 19일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길은 협착하고 좁지만
넓은 길이 아니어서
오고감이 불편하지만
좁은 길로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문이 작아 들어오기 힘들지만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고
무릎 꿇으며 들어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매맞음과 헐벗음
냉대와 멸시가 들끓는
가시밭길 험난한 길이지만
그 길로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네게 있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 미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가져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견딜 수 없는 외롬과
위로와 소망이 없는
모두가 떠난 빈 자리에서
일어나 십자가 아래로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세상의 영광은 줄 수 없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다며
헛된 욕망 버리고
내게로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나의 육신이 쇠하여져
장막을 벗어날 때에도
널 기다리는 내게로
두려움 없이 오라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너를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위로와 사랑이 넘치는
그 영광의 나라로
지금, 그 분이 나를 오라 합니다.
3) 5월 26일
밥을 짓는 남자
말을 잊어버려서
말을 할 줄을 모른다
입을 벌리는 것조차도 하지 못한다.
어떤 이는 음식 먹는 것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릇 뚜껑 여는 것도 모르고,
뚜껑부터 깨물어 먹으려고 한다.
무엇이 숟가락인지 음식인지를 알지 못한다.
국에다가 손을 넣어 손을 씻는다.
국물이 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나 국에 가루를 넣어
됨직하게 만들어 드린다.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이곳에 온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부인이 죽어 나가도
죽어 나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누군가가 음식을 먹여 주어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도와주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이들도 많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무리 지켜 보아도
살아가야 할 가치가 없는 삶이다.
굳이 가치를 둔다면
하나님은 그들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너싱홈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치매로 가족을 잃어버리고
각종 노환으로 질병으로
사랑하는 가족 품을 떠나
남의 손에 의해 살아가야만 한다.
돌보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대하나
친절한 마음보다도
직업의식이 우선하여 사무적이요
자기 편한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그곳에서 밥을 짓는 일을 한다.
밥그릇에 땀을 흘려 넣지는 못하나
정성의 마음을 쏟아 부어 밥을 짓는다.
가끔은 영적인 양식을 지어 드리기도 한다.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만 한다.
어저께는 아내와 한 방을 쓰고 있는
실어증 치매를 가진 분이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배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위에 넣어
음식이 저절로 들어가게 만들었기에
힘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잡은 손가락을 펴내는 데 한참을 걸렸다.
몇 번 기도해 드리고
자주 보는 것 뿐이었는데
그것도 아쉬운가보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위하여
오늘도 밥을 짓는다.
4) 6월 2일자
무엇을 품고 사는가?
이사를 하기 위하여 수퍼마켓에 가서 사과 박스를 얻어 왔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지라 집안에 빈 박스 두기도 그래서 미니 밴에 싣고 다니고 있다. 차에 탈 때마다 박스에 사과 향이 배어 있어서 그 향내가 얼마나 좋은 지 숨을 더 크게 들이 마시며 향내를 맡곤 한다.
아마도 그 박스에 모과를 담았었더라면 그 박스에서는 모과 냄새가 났을 것이고, 오렌지를 담았었더라면 오렌지 냄새가 났을 것이다.
사과 향을 맡으면서 느끼는 것은 먹어 보지 않고, 본 적도 없지만, 이 사과 맛이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아마도 이 사과는 약간은 푸석거리는 종류로써 맛은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사과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종에 따라 각기 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 사실 향이 없는 과일은 맛도 없는 편이다.
지금 나에게서도 분명 향기가 나오고 있을 터인데, 과연 어떠한 냄새가 날지 매우 궁금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내가 품고 있고, 지니고 있는 그것에 대한 향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기에 앞서 사람이기에 사람다운 인품의 향기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과연 내게 사람다운 맛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든다”라는 말이다.
물을 마시고 그 물이 각기 안에 만들어져 있는, 또는 훈련되어져 있는 그 습관에 따라, 그 여과장치에 따라 나오는 것이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여과장치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성품도 중요하지만, 자라오면서 받은 각종 교육과 환경 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여과장치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고장 날 수도 있고,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 질 수도 있고, 잘못된 환경 안에서의 성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여과장치는 바로 말씀(예수 그리스도)이다.
말씀을 통하여 걸러 나오는 것은 분명 달고 오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향은 담을 넘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퍼져 나갈 것이다. 말씀은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를 가장 맛있고 향기 있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 갈 것이다.
어디를 가나 맛을 내고 향기를 내어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쁨과 소망을 주고 그 고약한 환경 또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의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닌 말씀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말씀 앞에 온전히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이나 꽃이나 각기 종류대로 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 하나님의 사람도 그 맛과 향이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로운 말씀의 살리는 향이, 어떤 이에게는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소망의 향기가,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위로의 향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며 평안을 느끼는 따사로운 향내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각자에게 주어진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이다. 과일이나 꽃들은 그 모양이나 맛과 향을 가지고 서로 시기하지도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 나름대로 그 독특한 향내와 맛을 내면 된다. 그러기에 내가 받은 은사가 최고라고 자랑할 수가 없다.
지금 나에게서 나오는 맛과 향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에 우리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맛을 내주고 향을 내주는 여과장치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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