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는 뭐니 뭐니 해도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하면 영원히 중생으로서 해탈할 기약이 없다. 왜냐하면 지혜의 눈을 뜬 자만이 보살(菩薩)을 이룰 수 있고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법문중(佛法門中)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영원히 윤회(輪廻)를 면하고 보살이나 부처를 이루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보면 미물들과 별 다름이 없겠지만 귀히 여기기로 말하면 사람의 목숨만큼 귀한 것이 또한 없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항상 잊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음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며 둘째는 사도(邪道)에 빠지지 않고 바른 정법(正法)인 불법 만났음을 고마워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 말씀을 회상해 보건데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성불(成佛)하여 해탈(解脫)을 하는 데는 사람이 가장 빠르다’고 하셨으니 사람의 몸 받아 난 것을 기뻐해야 하고, 세상에는 사도들이 범람한데 다행이 바른 불법(佛法)을 만났으니 또한 기뻐해야 한다.
지옥(地獄)은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나기에 수행(修行)할 엄두를 못 내고, 천상(天上:하늘나라) 즉 욕계육천(欲界六天).색계십팔천(色界十八天).무색계사천(無色界四天))은 너무 쾌락에 빠져 수행하려는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는 지옥과 천당(天堂)의 맛을 모두 볼 수 있고 또한 경험할 수도 있기에 가장 수행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심을 잃지 않고 바르게 불법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혜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하면 정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업(業)만 더 짓게됨은 물론 외도(外道)들에게 끄달려 불법을 외면하므로 영원히 해탈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사도(邪道)를 정도(正道)로 착각하여 따르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나오고 미워하게 되며, 공연한 불화(不和)를 곳곳에서 일으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러기에 사도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일수록 불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바로 불자들이 불교를 바르게 알면 다른 종교를 믿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사도들의 눈에는 불교가 사도같이 보일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일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자기 스스로 받음을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한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싫거든 내가 먼저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자들은 대부분 말보다는 실천으로 옮기려 하기에 말은 능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참마음이 있다. 불자들은 진리 중에 진리인 종교를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선뜻 권하지 않는 이유는 남의 인격과 믿음을 그만큼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권하는 것은 괴로움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아랑곳없이 먹기 싫은 밥을 무조건 먹으라고 권할 때 어떠한 반응이 나오겠는가! 지혜의 눈을 뜨자. 지혜의 눈을 바로 뜰 때 성불(成佛)은 머지않아 내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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