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번째 주
미국 시민권시험 인터뷰에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성조기의 색깔과 별 및 띠의 수를 묻는 것이다. 청‧홍․백 3색과 13줄 띠는 영원히 바뀌지 않겠지만 50개 별은 머잖아 한 개 늘어날지 모른다.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7개월 간격으로 각각 49번째와 50번째 주로 승격된 1959년 이후 반세기가 넘은 내후년께 51번째 주가 탄생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미국국민들이 막상막하의 대통령선거를 치르며 몸살을 앓은 지난 6일, 대통령선거 못지않은 국가 중대사를 놓고 국민들이 투표한 나라가 지척인 카리브 해에 있었다.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이다. 미국 신문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뉴스로 떡칠을 하느라 흘려버렸지만 이날 푸에르토리코 투표에서는 국민 61%가 미국의 51번째 주 편입을 지지했다.
국가의 지위변경에 관한 이 주민투표에 166만여명이 참여해 현재의 미국자치령 체제를 바꾸자는 제안을 54-46%로 지지했다. 바꾸는 방법으로 미국의 한 주가 되자는 데 61%, 미국과 새로운 관계조약을 체결하자는 데 33%, 완전독립 국가가 되자는 데 5%가 찬성했다. 미국에 편입하자는 제안이 과반수 찬성을 얻은 것은 역대 주민투표 중 처음이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 주민투표는 1967년, 1993년, 1998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로 실시됐다. 세 차례 모두 미국자치령으로 남겠다는 의견이 대세였고 마지막 1998년 주민투표에서도 미국에 편입하자는 안에 과반수가 반대했었다.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파디야 총독은2014년 의회심의 후 또 한번 주민투표를 실시해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Rich Port)’라는 뜻인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 및 괌과 함께 넘겨받았다. 푸에르토리코 국민들은 이미 1917년부터 미국시민권자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미국대통령 선거권은 없으며 연방의회에도 하원에만 투표권이 없는 상징적 대의원 한명을 참여시키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주를 추가하는 절차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간단하다. 헌법 제4조에 따르면 연방 상하원이 각각 단순 과반수의 찬성으로 새로운 주의 미국편입을 가결한 후 대통령이 서명하면 끝난다. 푸에르토리코는 114년째 통치권이 없는 미국령인데다가 이미 국민 과반수가 미국 편입을 찬성한 상태이므로 푸에르토리코 측의 별도 합의절차도 필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의 국가지위 변경은 전적으로 푸에르토리코 국민의 자결권문제라며 자기는 미국편입을 지지한다는 뜻을 이미 지난 3월 밝혔다. 이번 푸에르토리코 국민의 자결권 행사에 따라 공은 미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연방의회가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미국 편입은 남가일몽이다.
미국 내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일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 본국의 유력 정치인들도 모두 민주당(이름은 다르다) 소속이다. 푸에르토리코가 51번째 주로 편입하면 민주당은 앉아서 연방하원 의원 1명과 상원의원 2명을 추가하게 된다. 공화당이 이를 달가워할 리 없다. 하지만 오는 2014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탈환하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콜럼버스가 1493년 ‘발견’해 스페인 식민지가 된 푸에르토리코에는 원주민 ‘타이노‘ 부족이 있었다. 이들은 노예로 혹사당하고 매독 따위의 서구질병에 노출돼 거의 전멸했다. 그 뒤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노예들과 그 후예들 역시 빈곤의 멍에를 벗지 못했다. 이번 미국편입 지지여론도 실업률이 13%를 넘나드는 등 경제파탄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푸에르토리코보다 더 가난한 북한은 어떨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춥고 배고픈 북한동포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편입을 결정한다고 가정하면 남한 국민들이 이를 수용할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입에 붙었지만 속셈은 다를 것 같다. 겨우 먹고 살만해진 마당에 북한주민들을 먹여살려야하는 멍에를 달가워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윤여춘(고문) 1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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