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교인(宗敎人) 이전에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살기에 공동 질서(共同秩序)도 필요하며 법도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종교인이기에 앞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믿기 때문에 다른 종교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사악(邪惡)한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불자들의 자세들 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불보살(佛菩薩)님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보단 자력신앙을 지향한다. 만일 자신의 의지를 저버리고 다른 어느 대상에 매달리는 타력신앙(他力信仰)을 하게 되면 진정한 깨달음과 해탈은 기약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나 자신에 의해서 살아간다. 만일 남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명 환자인 것이다. 환자는 정신과 육신이 불편하기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환자인 상태는 자생력을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정신 멀쩡하고 육신 멀쩡하다면 자신이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보면 자력신앙(自力信仰)은 바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려 깨달음을 성취하게하고 해탈(解脫)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바르게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불성(佛性)이 있다 하셨다. 불성은 즉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인 성품(性品)이 있으며 성품은 마음이라 했다. 마음이라는 물건은 묘(妙)하고도 묘해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며 크고 작음을 또한 알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어느 것에도 구애받기 싫어하며 강요당하기도 싫어한다.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 존재하지 않고 없는 것 같으면서 분명히 있는 것’ 그러니 묘(妙)하고 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마음이란 육체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화를 내기도하며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참 가르침에 따라 나 자신의 생로병사를 해탈하는 순간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를 깊이깊이 생각하여 속히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여야 하겠다. 내가 내 자신을 바로 잡을 때 바른 길은 저절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종교(宗敎) 어느 좋은 이론(理論)이 있다 해도 나 자신의 생사(生死)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이 죽으면 “어느 신이 데려갔느니 어느 누가 데려갔느니”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의 운명(運命)이 다했거나 혹은 자신의 실수와 주위사람들의 잘못으로 가는 수도 허다하다. 사람이란 눈뜨면 대상(對象)을 찾아 나서는 어리석은 습관 때문에 윤회(輪廻)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저 편하게 나를 구제해줄 신이나 나의 업장을 대신 받아줄 상대를 찾는 타력신앙을 많이 믿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어리석음을 떠나 바른 수행을 하여야 윤회해탈을 한다는 사실이다.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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