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월(1902-1934) 영문번역(변만식)
평양서 나신 인격의 당신, 제이 엠 에스 A man of character, JMS of Pyong Yang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He who hated my being of infidelity
재주 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He who yet hailed my intellectual
오산(五山) 계시던 제이 엠 에스 Lived in O-san. Ten years now, on this
십년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Spring day morning, I recall his memory
근년 처음 꿈 없이 자고 일어나며 Woke to clear mind from the sound sleep
얽은 얼굴에 자그만 키와 여윈 몸에는 Short,slender torso w/pock marked face
단 쇠끝 같은 지조가 뛰어날 듯 His eyes glowed hot, gushing out the
타듯 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Devotedness of his faith, like heated
민족을 위하여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 Steel spit for the cause of his Country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없어 Praise. The great love shall not go
기억되어 항상 내 가슴 속에 숨어 있어 His memory will dwell in my heart for
미쳐 거치른 내 양심을 잠재우리. Good and will purge my wicked mind off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날 때까지 Until the end of this earthly world
김소월은 조부의 알선으로 명문가문의 딸과 결혼 하였으나 그에게는 오순이란 첫 사랑이 있었다. 소월이 결혼 후 오산학교와 서울의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유학을 갔다 잠시 귀국하니 시집갔던 오순이 남편의 의처증으로 학대받다 병사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는 데카뎅 한 방탕의 길로 들어갔다. 조만식(曺晩植,JMS)은 소월이 다니던 오산학교 교장선생님 이었다. 자책과 참회어린 이 추모시가 쓰여진 얼마후 소월은 평북 구성에 있는 조부 묘에 참배하고 음독 자살했다(32세) 소월은 한국의 볼드레어르라 칭송받던 열정의 낭만시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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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만식 윤동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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