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아든다 ♪ 왠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 중에는~”
가슴에‘서필숙’이란 한국 명찰까지 단 필리스 위크만(Phyllis Wickman) 씨는 김세레나의‘새 타령’을 구성지게 불렀다. 어깨춤까지 덩실거리는 폼이 영락없는 한국의 시골 할머니다. 40년전 경북대 사대 부중에서 근무했다는 그는“내 청춘의 소중했던 시절을 보냈던 대구에서의 생활이 희미하지만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는 ‘심은경 할머니’도 무대로 나왔다.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 미 대사다. 신청곡은 김세환의 ‘토요일 밤에’. 대사님 체면도 잊고 춤까지 곁들여 신나게 부르자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스티븐슨 전 대사는 바로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으로 시작하는 ‘목포의 눈물’을 골랐다. 가사는 가끔 틀렸지만 노래에 실린 애상(哀想)의 정한은 원조가수 이난영 못지않았다. 그는 1975년부터 2년간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봉사한데 이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사로 봉직하며 한미관계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계속해서 래리 기터(Larry Geiter)씨의 흥겨운 ‘밀양 아리랑’이 이어지고, 장내는 차츰 동방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서 보낸 시간 속으로 저마다 추억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1960년-7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주한미군으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미국인들이 한민족의 명절인 설을 맞아 워싱턴에 모여 한국 가요와 추억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3일 저녁 한성옥에서의 설모임에는 스티븐슨 전 대사를 비롯해 지난해까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재임한 월터 샤프 예비역 대장, 영관장교 시절 주한미군에서 복무한 4성 장군 출신의 윌리엄 워드 전 아프리카 미군사령관, 80년대 주한미군에서 복무한 더그 로브 예비역 소장과 평화봉사단 출신들이 2000년에 결성한 ‘Friends of Korea(한국의 친구들)’의 회원 20여명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프렌즈 오브 코리아의 존 키튼(Jon Keeton) 회장은 “많은 한인들이 평화봉사단과 주한미군을 잊지 않고 있는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몇해 전 찾은 한국의 발전상에 너무 감사하고 우리들의 시간과 열정이 헛되지 않았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인사했다.
캐슬린 스티븐슨 전 대사도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 후 “워싱턴 지역에 많은 한인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지금 한미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고 말했다.
미 평화봉사단(The Peace Corps)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 “개발도상국에 봉사해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창설된 단체. 한국에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모두 약 1천800명의 단원이 2년간 파견돼 시골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공중보건, 직업훈련 분야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갈비찜과 잡채, 생선전, 김치, 국수 등 한식을 들며 한국에서의 오랜 이야기를 화제로 웃음꽃을 피웠다. 또 특별공연도 펼쳐져 참석자들을 감회에 젖게 했다.
워싱턴 소리청(단장 김은수)과 디딤새 무용단(단장 정수정)이 판소리 춘향가, 태평무, 가야금 연주, 민요를 선보이자 은발의 노신사들은 하나의 음과 몸짓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무대를 응시하며 옛 기억을 불러내는 모습이었다.
최은희 전 워싱턴여성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 시간에는 저마다 한국 가요 18번을 들고 나와 노래방 기기의 반주에 맞춰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심사를 맡은 월터 샤프, 윌리엄 워드 전 대장도 불려나와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70년대 초반 경북 영천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더글라스 씨는 “한식을 다시 먹고 노래와 민요를 들으니 어렴풋이 그 시절의 맛과 소리가 떠오른다.”며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내 삶을 풍부하게 했고 이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부터 설과 추석마다 이들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있는 황원균 영원무역 대표(전 북버지니아한인회장)는 “평화봉사단과 미군들의 도움으로 한국은 세계사에서 경이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며 “이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계속 되길 바라는 마음에 명절 행사를 계속 해오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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