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겨울 휴양지 중 화려하고 멋진 곳으로 유명한 곳은 알프스 산중에 있는 메제브라는 산마을입니다.
그곳은 금융계와 사교계에서 이름이 있는 프랑스의 로드칠드(미국에서는 로드챠일드라고 발음) 집안이 관여 되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메제브의 골프 클럽인 몽 다르보아(Mont d’Arbois-아르보아산이라는 뜻)에서 프랑스와 스위스의 유명 요리사 10여명이 참가하여 그들의 특기를 선보이는 행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열일을 제쳐 놓고 달려간 것은 물론이지요. 로드칠드 집안에서 자기네가 생산하는 술을 알리기 위하여 매년 9월에 여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니 이날 초대되어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모두 호텔과 레스토랑 사업에 관계되는 사람들이고 요리사들은 한 홀(hole) 건너마다 텐트를 치고 자기의 특기를 선보였습니다. 야! 이런 식으로 골프를 치는 것은 생전 처음인데! 물론 제가 관심 있는 것은 골프보다는 요리사들이 선보일 음식임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주최측의 일을 맡은 쟈넬 여사의 안내로 클럽의 명예 회장인 바로네스(귀족의 직위- 때로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나라에 기여한 일로 직위를 부여 받는 일도 있음) 나딘 더 로드칠드 여사와 인사를 하였습니다. 날씨도 어찌나 화창한지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는 간혹 흰 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고 따듯한 햇살로 겉옷을 벗어 골프 가방을 끄는 트롤리에 잡아매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골프를 치는 사람은 파리에서 온 골프 잡지 기자인 안토안 다보와 스위스에서 샤핑센터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업가 멋쉬어 베앗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첫 티(tee)에서 이곳의 골프 클럽과 스위스 크란스 몬타나에 있는 호텔에서 준비한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페, 달콤한 컵 케익, 설탕 넣고 찜을 한 과일,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었지요. 남편뿐 아니라 다른 두 남자들도 필경 공을 꽤 멀리 칠 것이 분명한데! 천만다행으로 제일 멀리 혹은 좋은 자리에 친 사람 자리에 공을 놓고 치는 스크램블(scramble)게임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넷이 팀이 되어 다른 그룹과 견주는 격이지요. 저는 거리로 경쟁하는 것은 포기하고 퍼팅에서나 한몫을 볼 생각을 하였습니다. 프랑스 중동부의 리용에서 온 요리사가 고소한 빠테(pate-부드러운 미트로프비슷한 것)를 그와 어울리는 술과 서브하였습니다. 오리 간, 송아지 고기, 피스타치오 열매를 넣고 만들었다고 하
였습니다. 아주 고소하고 유난히 맛이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5째 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파리 요리사, 미쉘 로스땅이 가늘고 작은 잔에 해물이라며 건네주었습니다. 게살과 짙은 생선 국물 맛이 고소한 크림의 맛과 어울렸습니다. 산뜻하게 입안에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넷이서 모두 으음. 하고 만족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홀마다 달라지는 눈앞에 멋지게 펼쳐지는 산 경치를 감상하며 그와 어울리는 약간 달콤한 맛이 도는 화이트 와인을 마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니 오늘 유난히도 골프 공은 왜 그리도 나르질 않는지!!! 게임에 지장이 있을지 모르니 술은 가능하면 조금씩 입술만 축이기로 하였습니다.
7째 홀의 천막에 도착했을 때 제네바에서 온 요리사 살라몽이 에스프레소(espresso-식후에 마시는 독한 커피) 잔에 부풀린 크림을 얹어 서브하고 있었습니다. 버섯과 코코넛의 맛을 가미한 것이라는 뒷설명만 들었지요. 버섯 맛을 가미한 에스프레소라구요?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더
묻지 않았습니다. 따끈한 국물이 혀에 닿자 그것은 기막히게 맛이 있는 야생 버섯 스프에 코코넛의 맛을 가미한 크림을 부풀려 서브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오늘 하나 더 배웠구나. 어쩐지 저의 질문에 아무 대답이 없더라니요. 애써 배우는 프랑스 말을 못 알아들었기를 바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맛이 있는 스프를 먹어 본 기억이 없어 제네바에 가면 그의 레스토랑에 들리리라 약속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매번 서브되는 술은 입술만 축이니 술 탓을 해야 할지. 공은 여전히 제 말을 안 들어 주더군요. 지난 일년 동안 이렇게 못 친 일은 기억에 없었습니다. 오늘 유난히 안 된다고 하면 핑계 같을 것이 분명해서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계속 픽 픽 헛나가는 공을 보자니...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고슴도치였으면 벌써 땅 속으로 사라졌을 텐데! 제가 너무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멀지 않은 데서 소떼들의 웅얼거리는 소리와 방울 소리가 들려 알프스 산마을에 온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였습니다. 16홀에 도착했을 때에는 붉은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였고 쌀쌀한 공기가 돌기 시작 하였습니
다. 깍은 듯이 우뚝 서있는 산, 그 앞의 푸른 초원에 여기저기 흩어진 산장, 그것은 동화책 하이디에 나오는 알프스 산 그림이었습니다. 스위스의 베르비에에서 온 요리사가 라클렛(Raclette)이라는 치즈를 데워서 감자 위에 늘어뜨려 서브하는 알프스 산 특유의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따끈해서 끝 마무리를 하는 데 아주 적당한 음식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감칠 맛이 나는 양파 샐러드가 유난히 잘 어울렸습니다. 따끈한 열에 녹아 말랑거리는 치즈와 얼버무려진 감자의 부드러운 맛에다가 새콤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겨자씨로 양념된 양파가 느끼한 맛을 싸악 가셔 주었습니다. 집에 가면 그 샐러드를 꼬옥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치즈는 우리 동양인의 입맛에 별로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씀. 한입 더 맛보겠다고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저녁에 클럽의 2층에서 그날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북적거리고 떠들석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호텔로 돌아가 씻고 새 옷으로 단장을 하고 모였습니다. 우리는 당일만 참가했기
때문에 골프를 친 그대로의 복장이었습니다. 잘 친 사람들에게 주는 상품은 그 모임에 어울리게 샤또 더 로드칠드(Chateau de Rothchild*)의 대형 술을 바로네스가 직접 상으로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별미의 음식을 맛보게 해준 참가한 요리사들이 하나하나 소개 되었습니다. 끝으로 멀리서 온 ‘마담 김’을 소개 한다고 저를 불러내었습니다. 옆 동네에서 온 것도 모르고. 별도로 참가한 상을 주었습니다. 저의 골프 실력이 어땠는지 알면 분명히 주려던 그 대형 술병을 다시 갖고 갔으리라 생각했지요. 밤늦게 산마을을 내려오면서 저도 모르게 벌써 다음에 찾아올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샤또는 프랑스 말에서 성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유명한 더 로드칠드성의 관할구역 내에서 생산되는 술이란 뜻.
메제브의 골프클럽 몽 다르보아에서 첫 티를 가진 후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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