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사회적 자양분이나 지적 자양분을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끊임없이 레버를 누르는 실험실의 쥐가 된다. 게다가 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원하는 데이터의 이해를 방해한다.
이는 정보 검색 행위가 정보 자체보다 중요해지면서 우리의 의식이 이미 찾은 정보와 또다시 검색하려는 정보에 대한 생각으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점점 산만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능력과 추론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디지털 환경에서 매일같이 읽어대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자명하다. (폴 로버츠의 ‘The Impulse Society’ 중에서)
의미 없이 TV를 오래 본다든지, 주제와 관계없는 수많은 인터넷 정보에 노출되어 시선을 빼앗길 때, 인간의 뇌는 관심병목(attention bottleneck)현상을 일으킨다. 그 결과 머릿속에 비슷한 정보를 과다하게 입력시키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 상태가 심화되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산만하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무서운 호랑이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서커스단의 조련사가 호랑이를 훈련시킬 때 다리가 네게 혹은 여섯 개 달린 의자를 사용한다.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도 어디에 초점을 둘지 모르면 더 이상 맹수는 아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호랑이를 보라. 분명하게 집중하기 위해 큰 무리의 영양을 보더라도 오직 한 마리만 바라보고 달린다.
한번은 예수는 많은 무리와 광야에 머물렀다. 저녁 무렵이 되었는데 군중은 먹을 양식이 없었다. 예수는 무명의 소년이 들고 나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셨다. 날이 저물자 예수는 무리를 벗어나 홀로 산으로 들어 가셨다.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횡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광풍이 불면서 배가 요동을 쳤다. 비명 소리를 들으신 예수는 호수 위를 걸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 오셨다. 베드로가 호수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
베드로가 반가워 소리쳤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예수께서 말했다. “오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배에서 뛰어내려 물 위로 걸어갔다. 얼마간 잘 걸어갔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베드로를 덮쳤다.
베드로는 파도를 보고 놀랐고 동시에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는 소리쳤다. 예수는 말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는 물속에 잠겨 있는 베드로에게 손을 뻗어 건져 주셨다.
의심하지 않고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본질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목표로부터 한 눈 팔지 않는 것이다. 집중력의 실패가 베드로를 물속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관심의 경제학(The Attention Economy)”을 저술한 토마스 데이븐포트(Thomas Davenport)는 말했다.
“오늘날 개인이나 단체가 큰 재앙을 겪는 이유 하나가 꼭 관심을 가져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주제에다 관심을 기우리는 <집중력 장애결핍>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라. 모든 위대함은 집중에서 나오고 집중은 탁월함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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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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